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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LIFE

북촌여행 연재, 한용운 선생 숨결 깃든 게스트하우스 만해당

연재북촌주민 하얀잉크의 북촌이야기

북촌의 특별한 게스트하우스, 만해당


북촌의 골목여행을 연재하면서 숙박하며 여행할 수 있는 북촌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님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만해당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만해 한용운 선생이 3년여를 머물렀던 유심사가 있었던 터라고 한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 있는 만해당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계동길 랜드마크였던 중앙탕 옆 골목에 위치한 만해당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이다. 나조차도 숱하게 계동길을 드나들면서도 만해당의 존재를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만해당 입구 왼편 벽면에는 이 곳이 유심사 터임을 알게 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용운 선생은 이 곳에서 1916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3년여를 머물며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는 등 3.1운동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때 발간한 불교잡지 '유심'은 불교의 홍포와 민족정신의 고취를 목적으로 간행돼 뒷날 그가 관계한 ≪불교≫ 잡지와 함께 가장 괄목할 만한 문화사업의 하나로 평가된다.


사실, 한용운 선생에 자취가 얽힌 곳은 많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는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멀지 않는 성북동에는 한용운 선생이 손수 지어 머물다 생애를 마친 심우장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과 3년밖에 머물지 않은 만해당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선생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3·1운동을 준비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할 당시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만해당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됐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만해당에서 한용운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내부는 들여다 보지 못했는데 만해당 웹사이트에서 내부 풍경과 함께 예약상황도 볼 수 있다. 다양한 크기의 방들이 총 4개 있다고 한다.


만해당 웹사이트 바로가기 | http://www.manaedang.com/html/about_02.html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


한용운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의 시 <님의 침묵>이 아닐까? 누구나 교과서에서 <님의 침묵>을 배운터에 독립운동가나 승려 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한용운 선생의 본명은 정옥(貞玉)이고, 용운은 법명이다. 만해(萬海, 卍海)는 법호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는데, 천도교 3대 교주로 천도교 대표로 참여했던 손병희 선생을 설득하여 첫 서명자로 끌어들인 이가 한용운 선생이었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과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이 있기도 했다 전하는데 마지막 공약삼장은 한용운에 의해 추가되었다고 한다.


공약삼장 보기


훗날 변절한 육당이 길에서 만해를 보고 “오랜만이오 만해” 하면서 다정스레 손을 내밀자 “당신이 누구요?”라고 반문했다 한다. 만해는 “나를 몰라보느냐?”고 답답해하는 육당에게 냉연히 대꾸했다. “뭐 육당? 그 사람은 내가 장례 지낸 지 오랜 고인이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해서 월남 이상재(月南李商在)의 사회장(社會葬) 발기인이 되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독립군 지휘자 김동삼(金東三) 열사가 옥사, 시체로 나왔으나, 아무도 돌볼 용기가 없을 때 그가 나가 후히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 그는 검은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원고지에다 ‘내지(內地, 日本)’라 써야 할 경우 빈 칸으로 띄었다. 


독립운동가로서 한용운의 면모는 그가 지은 심우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 이유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을 1년 남겨 둔 1944년 냉골과 같던 심우장에서 초라하게 생을 마쳤다.


| 출처. 한국문단사 1908-1970, 2003.8.30 (한용운 선생의 생애가 더 궁금하다면 클릭)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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