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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공연 전시 영화

영화 '이끼', 구원과 속죄...그리고 인간

비회원 2010.07.25 01:30
지난 23일 금요일 저녁, 영화 '이끼'를 봤습니다.

친구가 정말 오랫만에 같이 영화를 보자고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무슨 영화를 보는지 묻지도 않고 보러 간 영화가 '이끼'. 원래 겁이 많은 편이라 공포나 스릴러 영화는 보지 않는 편인데 스릴러 영화더군요. 영화 중간중간 무서운 장면들과 마음 졸이는 장면들이 나와 몸을 한껏 웅크리며 봤습니다.

 
보고 나니 개봉 10일만에 150만이 봤다는 기사가 떴더군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데도 영화예매사이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보니 강우석 감독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영화 '이끼'는 정재영, 유해진, 박해일, 유준상 등 명품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영화상영시간이 다소 힘겹게 느껴지고 중간에 루즈해지는 감이 있었지만 유해진의 신들린 연기와 정재영의 눈빛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래 부분부터는 영화 내용을 분석하기 때문에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신 다음에 읽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모순성에 대한 물음표


어젯밤 영화 중간중간 무서운 장면들이 떠올라 섬뜩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영화의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해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영화는 아버지 유목현(허준호 분)의 부음을 들은 유해국(박해일 분)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 마을 이장 천용덕(정재영 분)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 해국을 불편해하고 경계합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해국은 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마을에 남게 됩니다.

 

아버지 유목현은 왜 죽었을까? 유목현은 어떤 사람이었나? 유해국이 진실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마을 사람들은 유해국을 거부합니다. 영화는 아버지 유목현과 이장 천용덕이 삼덕기도원에서 만나 이 마을로 들어와서 살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핵심에는 인간의 죄, 즉 인간의 근본적인 모순성이 있습니다.


아버지 유목현은 월남전에서 돌아온 뒤 죄를 씻고 싶다고 삼덕기도원에 들어와 성경을 50번 읽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선한 인간의 본성을 믿어야 한다. 구원은 우리 내부에 있다.' 등 유목현의 말은 기도원의 형재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삼덕기도원 원장은 그 지방 형사로 있던 천용덕에게 유목현을 구속해줄 것을 말합니다. 원장은 "큰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고 말합니다.  

 

 


속죄와 구원, 진정한 교화의 시작


유목현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독방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천용덕은 죄수들을 시켜 유목현을 괴롭히지만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테러에도 순교자와 같은 자세로 저항하지 않는 유목현에게 결국 감화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천용덕은 유목현에게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모아 진정한 속죄와 구원, 교화를 해보자고 설득을 합니다. 이상을 가진 유목현과 그 이상을 현실화시키고 싶은 천용덕이 함께 작은 공동체를 만든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들이 생각나더군요,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가?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한 천국의 이상이 가능한가? 인간의 선화가 가능한가? 등등 그 시절 고민했던 질문들도 덩달아 떠올랐습니다. 영화는 이런 질문에 바로 답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불가능한 이상, 지배이데올로기


영화는 이런 진지한 질문을 탐구하지 않습니다. 유목현의 이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맙니다. 천용덕이 유목현의 이상대로 하는 것은 현실의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공적인 세계에서는 유목현의 이상을 따라 생식을 하고 속죄를 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가리진 세계에서는 천용덕을 따라 육회를 먹고 매매춘을 하며 폭력으로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갈취합니다.

 
천용덕에게 유목현의 이상은 단지 이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천용덕은 유목현이 필요했을까요?  유목현에게는 돈이 있었습니다. 월남전에서 받은 돈과 삼덕기도원 사람들이 유목현에게 기부한 돈 말입니다. 그러나 천용덕의 이어지는 악행으로 볼 때 유목현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거라는 짐작이 듭니다. 천용덕은 유목현의 돈보다는 그의 이상이 탐났을 것입니다. 유목현의 이상은 모든 인간은 선하며 속죄의 생활과 끊임없는 수련과 절제를 통해 선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상은 마을을 유지시킬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죄인으로 구성된 마을 구성원을 통제할 수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 말입니다.

 



불편한 진실, 단죄의 칼날


속죄의 생활과 절제를 통해 선화될 수 있다는 유목현의 이상을 따라 마을공동체가 시작되었지만 천용덕이 바란 것은 구성원의 속죄나 구원, 선화가 아니었습니다. 천용덕이 보기에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선회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구성원을 교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결국 진정한 속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개개인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유목현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죄인을 향한 비수가 되고 단죄의 칼날이 되고 맙니다. 진실을 찾는 유해국에게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말입니다.


유목현은 천용덕이 자신의 이상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칼을 들고 천용덕을 죽이려 합니다. 결국 유목현은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일순간 살인의 충동에 휩싸이고 맙니다. 그의 이상이 완전한 실패, 완전한 파국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럼 유목현은 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이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마을공동체를  떠나지 않았을까요? 천용덕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감금되듯 살아온 걸까요? 자신의 죄을 벗기 위해 묵묵히 수행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유목현이 아내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완전한 천용덕의 통제 아래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짐작해봅니다.

 



먼 구원보다 가까운 복수와 심판


영화 '이끼'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영지(유선 분)를 등장시켜 반전을 가져옵니다. 이영지는 어린 시절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기도원에 들어와 살던 십대소녀였습니다. 유목현은 천용덕에게 이영지의 복수를 부탁하죠. 그녀의 말처럼 그녀에게 유목현은 구원을, 천용덕은 복수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마을구성원 중 유일하게 유목현의 이상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현실의 천용덕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힙니다.


결국 영화에서 가장 가련한 희생자는 이영지였습니다. 그녀는 유목현을 지키기 위해 진흙탕 삶을 선택하지만 구원은 없었습니다. 유목현은 그저 나약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영지는 성경에 천용덕 이름을 쓰고 복수를 기도하였지만 심판은 그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천용덕에게 복수할 사람, 바로 유목현의 아들을 부르게 됩니다. 유해국을 부리기 위해 그녀가 유목현을 죽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분분한 것 같습니다만 그녀가 의도적으로 유해국을 부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영화 내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 한켠이 씁쓸하고 무서운 것은 인간에 대한 현실적인 혹은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죄와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은 결국 현실적인 복수, 심판으로 현실을 바꿀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속죄와 교화의 생활을 하는 것, 공동체 구성원이 행복에 도달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인간의 꿈일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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