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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일상다반사

촛불집회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참주인 국민들

하얀잉크 2016.12.11 23:00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를 매주 나가는 이유


매주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광화문 광장에 나선다. 멀리 지방에서도 매주 차표를 끊고 상경한다는데 15분 거리에 살면서 나가는 것을 마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러 나간 것이 아니기에 사진은 몇 장 없지만 참주인으로서 국민으로서 행동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11월 19일

아마 제4차 범국민행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주에 친구 아내의 기일로 인해 춘천에 다녀오느라 첫 100만명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본 집회 시작인 6시 전에 이미 수많은 인파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고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아이들때문에 오래 있지 못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의 노래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11월 26일

첫 눈이 내렸다. 하지만 변함없이 광화문 광장에는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운집했고, 전국적으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바람은 거샜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청와대 200m까지 행진이 허용되면서 시민들은 서촌 내자동으로 북촌 삼청동으로 행진했다. 이 날은 마트에 가야 한다는 아내를 따라 양재 코스트코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돌아오는 차는 막히고 설상가상 남산 1호 터널을 빠져나오자 차량 통제로 유턴을 해야만 했다. 명동으로 가는 길도 차단, 을지로를 통해 간신히 집에 돌아와 삼청동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 경찰들은 확성기를 들어 해산하라 명했지만 시민들의 함성은 그치지 않았다. 


전국각지 대학에서 올라온 학생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자유발언대에 올라 박ㄹ혜 하야를 외쳤다. 횡성에서 올라왔다는 민사고 고등학생은 국민 5%가 일어나는 시위는 실패한 역사가 없다고 외쳤다. 동네 주민으로서 자유발언대에 오르고 싶었으나 대기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차벽 아래 선 것만으로 만족했다. 촛불은 결국 차벽에 막혀 다시 광화문으로 행진했는데 지나는 마지막 쓰레기 봉투를 들고 촛불이 지나간 자리를 치우는 이들이 있었다.












#12월 3일

촛불은 멈추지 않았다. 본래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지 않았던 날인데 전날 탄핵 소추안 처리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삽질로 늦춰지자 국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분노한 촛불이 전국적으로 200만 명을 돌파한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232만 명. 헌정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되며, 이 날은 참 많이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삼청동 차벽에서 광화문광장으로 그리고 경복궁 영추문 방향으로 효자동 차벽 인근까지 걸었다. 안국역부터 사직터널까지 차량통제된 도로에 촛불을 든 국민들로 가득했다. 영추문으로 향하던 길에는 들어오려는 인파와 나가려는 인파가 뒤엉켜 발딛기에도 힘겨웠다. 걷다 보면 곳곳에 마련된 자유발언대에 오른 국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치동에서 온 중학생, 헌법을 처음으로 가르친가는 6학년 샘, 손주가 여섯이라는 할머니 그리고 비즈니스로 한국을 찾았다는 외국인까지~ 참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결론은 동일했다. "명예퇴진은 없다. 당장 내려와라!" 다양한 주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매주 촛불집회에 나가는 이유가 되었다.






#12월 10일

촛불의 힘으로 드디어 탄핵이 가결됐다. 가결을 기쁨을 나누기 위해 촛불이 모였다. 국민들이 마음 놓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날은 의도치 않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종각에 있는 병원 다녀오는 길에 광화문광장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벌써 사람들이 모이나 싶어 가보았다.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한가득. 이제는 나이든 분들도 많이들 나오시는구나 했더니 탄핵은 무효라고 외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세히 보니 박사모 집회였다. 매체에서 보아왔던 그 분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빠르게 빠져나오는데 왜 좌파에게는 차도까지 허락하면서 우리에게는 통제하냐고 불만 터뜨리시며 차도를 점거하려 하고 하야현수막을 마구 훼손하기까지 서슴치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대여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얼마든지 광장을 내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질서 속에 이루어진 혁명이란 사실을 잘모르시는 모양이다.


저녁에는 딸아이와 손을 잡고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역사적인 현장에서 LED 촛불을 들고 아이가 방긋 웃었다. 그리곤 피곤했는지 416 합창단이 노래한 인권콘서트에서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길 소망했다.


영하의 온도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지만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됐고 이제 헌재의 결정이 남았지만 촛불은 멈추지 않고 광장에 다시 모인다 한다. 이 말도 안되는 사회에서 유일한 희망은 촛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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