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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기행 역사편, 배화여고와 사직단 논쟁 속 역사 들여다보기 본문

여행스토리/국내

서촌기행 역사편, 배화여고와 사직단 논쟁 속 역사 들여다보기

하얀잉크 2016.09.22 19:47

북촌이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골목길이라면 서촌은 아기자기한 미술관과 근대 문학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골목여행이다. 


북촌과 이웃하고 있지만 경복궁과 청와대가 담처럼 경계를 이뤄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는 동네이다 보니 그다지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다녀온 사진을 토대로 서촌기행을 정리해 보았다.


▣ 배화여고 교정(누하동) ---- ▣ 사직단(사직동)




100년 역사와 전통의 산실, 배화여고 교정


필운대로에 위치한 배화여고. 마침 추석연휴라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하여 둘러보았다. 배화여고는 미 선교사에 의해 설립돼 캐롤라이나학당에서 배화학당으로 이제는 배화여대, 배화여고-여중, 유치원까지 갖춘 종합캠퍼스이다. 그럼에도 교정은 매우 아담하다.





배화학당이 현재 위치의 교사로 이전한 것은 꼭 100년 전이나 설립연혁으로는 11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학이다. 대학교가 설립된 것은 70년대의 일이니 전통을 이어온 것은 배화학당으로 여고와 여중이 분리된 것은 1951년의 일이다. 배화여중은 상명여중과 함께 종로구에서도 이름난 명문이다. 위 사진 속 건물이 측면에서 본 옛 기숙사(생활관) 건물이다. 정면에서도 찍고 싶었으나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역광이라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이 사진의 건물은 배화여고 본관의 모습인데 옛 생활관, 과학관과 더불어 최근 배화학원이 서울시와 함께 문화재로 추진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들에서 1900년대 근대 서양식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유치원 옆에 위치한 과학관 건물은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동문들의 반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직단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


배화여고에서 종로도서관 방향으로 5분 남짓 내려오면 행정구역이 누하동에서 사직동으로 바뀌게 된다. 사직동의 명칭은 사직단에서 유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로도서관과 종로어린이도서관 옆으로 사직단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사직단에 처음 발길했을 때도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직단을 둘러싸고 진행중인 논란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그 가치가 상실해 사직단이란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사직단은 '우사좌묘'라는 말이 상징하듯 조선시대 국가 최고의 의례시설이었다. 서울로 도읍을 정한 태조는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짓고 좌측에 종료를 지었다. 종묘가 역대 제왕들과 왕후들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면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이러한 제사는 매우 중요했기에 왕이 직접 관장하여 2월과 8월, 동지와 섣달그믐에 제사를 지냈다 한다.


제단이 있는 안쪽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 얼핏 보면 건물이 있었던 터로 보기 쉬우나 담장 안으로 3층 높이의 제단이 쌓여져 있다. 제단이 두 개인 것은 동쪽의 국사단에 토지의 신을 모시고, 서쪽 국직단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나라에 전염병이 돌거나 가뭄과 홍수가 나면 백성과 나라를 위해 조선의 왕들이 제를 올렸던 성스러운 곳. 사직단이 조선총독부에게는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일제는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듯 사직단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해 사직공원을 조성했다.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이곳에 야외수영장, 도서관 등이 들어섰다. 남산도서관과 함께 유일한 서울시립 도서관이었던 종로도서관이 탑골공원 옆에서 이곳으로 이전했고,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1979년 어린이날을 기념해 세웠졌다.


현재의 논란은 문화재청이 사직단 복원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자면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 등이 철거되어야 한다. 이전하면 그 뿐이라 할 수 있지만 30-40년의 역사는 무시되어도 좋다는 문화재청의 발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 관련기사- 문화재청의 '불도저' 사직단 복원사업



사직단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농경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설이었는지 가치를 되찾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땅덩어리 좁은 나라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외형을 복원하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그 가치를 교육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조차 바로 옆에 있는 사직단의 가치를 모르는 현실에서 사직단이 본래 모습을 찾는다고 아이들이 알 수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먼저일지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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