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570
Total
5,691,990
관리 메뉴

하얀잉크의 해피컨텐츠

병원24시, 어머니 수술실 앞에서의 소소한 기록들 본문

Life/일상다반사

병원24시, 어머니 수술실 앞에서의 소소한 기록들

하얀잉크 2014.10.02 07:00

어머니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며 기록한 소소한 일상


세 번의 입원, 그리고 더는 미룰 수 없는 수술. 어머니가 미뤄왔던 심장판막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워낙 큰 수술이라 10시간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은 잘 마쳤다고 합니다.

꼬박 11시간만에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아직 잠에 빠져 계시지만, 화장기는 물론 핏기 없이 주름만 가득한 얼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 그 어머니입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는데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많이 됐습니다.




▲ 이런 큰 병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아래는 병원에 있으면서 기록했던 소소한 기억들입니다. 모아 보니 24시간 동안 병원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메모로만 남기는 것이 아쉬워 올려봅니다.


어머니 심장이 나빠진 것이 어릴 때부터였다는 의사말에 어머니는 한국전쟁 피난시절을 떠올렸다. 인민군 비행기의 무차별 폭격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손을 다치셨던 그 때~ 이후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프셨단다. 불과 어머니 나이 열 살때의 일이다.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처음으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게 되었다.




▲ "수술중"에 불이 들어오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광경은 없었다.



수술실 앞에서 10시간을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간절히 빌 뿐 그리다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1. 나는 왜 평생 아픈 어머니를 보며 의대갈 욕심을 내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수학을 너무 일찍 포기했다.


#2. 한적한 곳을 찾다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러니까 창경궁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회복해서 걷을 수 있게 되면 모시고 산책와야겠다.





▲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뷰가 아닌가?



#3. 하필 이런 날 어제 블로그에 올린 글이 Daum 메인과 티스토리 메인에 동시에 올랐다. 어제 오를 거라 예상하고 쓴 글이었는데 다음카카오 시계가 하루 늦다.


#4. 점심을 먹기가 애매해 샌드위치를 하나 사 바람도 쐴 겸 앞마당으로 나갔는데 새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처음 비둘기 한 마리가 화근이었다. 샌드위치 냄새를 맡았는지 슬금슬금 내 곁에 오길래 사람을 전혀 무서워 하지 않는구나 귀엽게 바라봤는데 노골적으로 동냥을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식빵 모서리를 잘라 던져줬더니 사방의 비둘기와 참새들이 날아와 내게 달려오는 것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가 연상됐다. 난 그만 소리를 빽 질렀다.




▲ 이 녀석 사진찍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새가 이렇게 징그러울 줄이야...



#5. 소화시킬 겸 함춘서재에 들렀다. 이미 준비해 온 종이책과 전자책이 있었지만 심란한 마음에 글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기는 개뿔 윤태호 작 미생에 빠졌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멘트는 장그래 파트너 한석율의 한마디. "보다 널리 세상을, 나를 많이 이롭게 하는 게 무역이죠"




▲ 장그래와 한석율은 어떻게 됐을까? PT 발표 전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6. 10시간을 기다려 수술대에 누운 어머니 모습에도 담담하던 누나가 면회를 마치자 울음을 터뜨렸다. 한때 강철마녀라 불리우던 그녀도 늙나 보다. 아니면 엄마 앞엔 누구나 한낱 어린아이일 뿐인가?


#7. 집에 돌아와 샤워하며 구석구석 닦았다. 이제 병원 소독약 냄새만 맡아도 괴롭다. 내가 이런데 당신께서는 얼마나 사세부득인가.


#8. 사실 오늘도 맘 편히 잘 수는 없다. 보호자를 찾는 연락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럼에도 병원이 집에서 코 앞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9. 10월의 첫 날이다. 부디 마지막일이 아닌 새로운 삶의 첫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오늘 하루는 무척이나 길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 Comments
댓글쓰기 폼